2009년 12월 29일 화요일

“야! 이 빵꾸똥꾸야! 그거 풍자잖아!”

“야! 이 빵꾸똥꾸야! 그거 풍자잖아!”

꼭 이런 친구들이 있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유행어를 흉내 내면, 뻔히 알면서도 진지하게 “그래도 2,3등 까지는 괜찮은 거 아니야?”하는 친구들. 혹은 “‘더러운  세상’이라고 하면 너무 비관적인 거 아니야?”라고 되묻는 친구들. 이런 말 한 마디에 친구 관계는 금방 냉랭해 진다.

지난 8일 방송통신심의위에서 ‘빵꾸똥꾸’라는 말의 사용에 대해 제동을 건 것이 요즘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빵꾸똥꾸’는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극중 호등학생 ‘해리’가 버릇없이 자주 쓰는 말이다. 

방통심의위는 해리의 “왜 때려 이 빵꾸똥꾸야!”, “먹지마! 이 거지 같은 게 내가 사온 케이크를 먹으려고!”등의 대사가 방송법 제 100조 1항을 위반했다고 권고조치를 내렸다. “다른 어린이들의 모방이 우려된다”고 이유를 들었다. 이에 M경제지는 <데스크칼럼>이라는 코너를 통해 한 발 더 나가 “TV는 공공의 선을 의식해야”한다며 현 ‘사태’를 자못 진지하게 또 호되게 질책했다. 심지어 한나라당의 C의원은 극중 ‘해리’를 두고 “정신분열증에 걸린 게 아닌가!”라고 독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누리꾼들은 대체로 “방통심의위가 그렇게 할 일이 없냐!”는 반응이다. 또 소설가 이외수 씨는 “대한민국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다. 이러다 통금도 살아나겠다!”라고 개탄했다.

물론 ‘빵꾸똥꾸’ 말 자체만 놓고 보면 좋은 말은 아니다. ‘빵꾸똥꾸’를 표준어로 풀이하면 ‘방귀, 똥 냄새나는 방귀’정도가 될 것이다. 듣기 좋은 말이 아니다.

하지만 말에도 그 말을 구성하는 상황이나 맥락이 있고, 작품이라고 하면 작가나 제작자가 의도한 대사의 기능이 있을 것이다. 이런 걸 좀 어려운 말로 ‘행간을 읽는다’고 한다. 이걸 잘해야 독해를 잘하는 것이다. 나아가 언어로 ‘소통’을 잘 하는 것이다.

내가 ‘빵꾸똥꾸’라는 ‘미운’ 말을 별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고, 따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말의 사용이 뭔가를 풍자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록 남의 집에 식모살이를 하고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지만 착하고 고운 그리고 순수한 자매 ‘세경’, ‘신애’가 어려움 없이 부유한 집 손녀딸로 자라는 ‘해리’와 비교될 때 그들의 아름다움은 더욱 빛났다.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선명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돈이 아니라 마음이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진짜 가치다!’

그렇기 때문에 ‘해리’가 ‘빵꾸똥꾸’를 말할수록, 버릇없이 굴면 굴수록 속으로는 ‘버릇없는 녀석’이라고 반감을 느꼈지만 ‘빵꾸똥꾸’라는 말은 TV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라고까지 생각할 수 없었다. 오히려 호감까지 느꼈다.

안동 하회탈이 그 자체로 풍자의 성격을 가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중탈’, ‘양반탈’, ‘선비탈’ 등을 보고 왜 중을 모독하느냐, 양반을 욕되게 하고 고매한 선비 상을 왜곡하느냐 한다면 뭐라고 말해줘야 하겠는가? 풍자란 어떤 대상(주로 부도덕한 사회 상류층)을 비판하되 해학적이면서 사실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판의 대상으로 하여금 그 비판을 받아들이기 쉽게 해주고, 그들이 대중들(서민들)과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렇다면 ‘빵꾸똥꾸’라는 말은 풍자성을 가졌는가? <지붕 뚫고 하이킥>은 ‘빵꾸똥꾸’라는 말을 등장시켜 버릇없는 상류층 자녀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동시에 우스꽝스럽게(혹은 추하게)그림으로써 그들의 ‘못난’ 행동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의도했건 안 했건, 우리 사회 ‘양반님들’을 풍자하고 있다.

자꾸만 방통심의위가 대통령의 “막말 방송을 없애라!”라는 말에 배를 바닥에 깔고 살금살금, 충성 경쟁을 벌여 하나라도 실적을 더 올리려고 오늘과 같은 사태를 일으킨 것이 아닌지 의심이 스멀스멀 차오른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야! 이 빵꾸똥꾸야! 그거 풍자잖아!”

빵꾸똥꾸

서울에 하얀 눈카펫이 깔린 아침.

집을 나서다 '빵'하고 터졌습니다.

이웃에 사는 누군가의 장난이

하루종일 저를 웃게 만들었습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빵꾸똥꾸를 외치며 잊고

유쾌하게 살아가요^^

2009년 12월 26일 토요일

왜 재래시장에서만 흥정하는가?

왜 재래시장에서만 흥정하는가?

■타지에서 묵호항을 찾은 관광객들

p090411_004.jpg동해안에 묵호항이라고, 강원도 동해시에 위치한 포구가 있다. 크고 작은 고기잡이배가 조업을 떠나고 돌아오는 곳이다. 포구 안으로 어시장이 열린다. 그날 잡은 생선을 가장 신선한 상태로 또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곳이다. 생선을 담은 빨간 고무 대야가 즐비하다. 요즘은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외지에서 단체로 찾아오기도 한다. 포구에 연이은 어시장이 색다른 풍경을 자아낸다. 강원도의 여느 지자체와 마찬가지로 동해시도 지역의 곳곳에 관광 상품을 개발하기 위해 애쓰고 있고, 묵호항도 그 중 하나이다. 그 덕분인지 주말이면 수많은 관광객들이 동해로, 묵호항으로 찾아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격 흥정도 벌어진다.  

 

■‘능숙한’ 서울 말씨로 잘도 깎는다.

 

사실 지역민의 입장에서 보면, 지역 경기 사정을 워낙 잘 알다보니(또는 지역의 습성 상) 쉽게 깎아 달라는 말을 못 꺼낸다. 하지만 외지에서 찾아온 손님들은 ‘능숙한’ 서울 말씨로 “깎아 달라”, “비싸다”, “몇 마리 더 넣어 달라”라는 말도 참 잘도 한다.한쪽 귀퉁이에 보면 좁은 간이 의자에 앉아 생선 만원어치에 손질을 해 주는 아주머니들의 칼 쓰는 손이 바쁘다. 나의 할머니가 삼척 정라진항에서 생선 손질을 해서 6남매를 키웠다 하니 마음이 쓰이는 건 인지상정이다. 할머니는 하루 종일 생선 목을 따고 배를 갈라 비늘을 긁어내고 손질을 하셨다. 바가지에 내장을 모아 저녁으로 생선국을 끓이셨다 한다.

 

■생선손질값 만원당 천원이 불합리적인가?

 

생선 손질을 하는 아주머니들은 만원어치 생선에 천원어치 손질 값을 받는다. p090411_001.jpg오만 원어치를 사면 손질 비용은 오천 원인 식이다. 물론 집에서 본인이 직접 손질을 해도 무방하다. 나는 이날 삼만 원어치 잡어 십여 마리를 구입했다. 이를 손질하는데 30분 이상이 걸렸다. 이로 보아 들어가는 노동에 대한 대가로 10대 1의 구조가 그다지 불합리하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더군다나 본인이 요구하면 생선 머리나 내장은 매운탕 거리로 따로 챙겨주기도 한다. 또 오랜 경험으로 인해 손질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웬만한 사람이 스스로 공을 들여도 그만큼의 상태를 만들기 쉽지 않을 것이다. 삼천 원에 대해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형 마트의 ‘질서’에 익숙한 손님들은 생선 가격에 손질 비용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속았다는 표정을 짓거나 불평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손질 비용을 합친 가격으로 계산을 해 보아도 절대 손해 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어디서 이렇게 신선한 자연산 생선을 구경이라도 할 것인가. 허나 결국 오천 원을 사천 원으로 깎음으로 ‘목표 달성의 영예’를 누리는 사람들도 간혹 볼 수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서 자신의 ‘무용담’을 몇 번이고 반복할 위인들이다. 천 원 이천 원을 남겨 어디에 쓰려는지 묻고 싶었다.

 

■똑같은 ‘장사’인데 왜 대형마트에서는 못 깎나?

 

활어손질비용.jpg홈플러스나 이마트 등 대형 할인 마트에선 흥정이 불가능하다. 모든 상품이 정가제로 판매되기 때문이다. 근래에 홈플러스에서 10년 전 가격이라 TV광고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대형마트에서 10년 전 가격보다도 싼 재래시장물건들은 자본이 없어 알릴 수 없다. 또 물가는 10년 전보다 올랐는데, 10년 전 가격으로 판다면 그 차액이 누구가가 감내해야할 고통이 되진 않을지. 다만 이런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무튼 10년 전 가격으로 팔아도 기업이 번창하고, TV광고비용을 늘리는 것을 보면 많은 영업 이익을 남기고 있음은 명백해 보인다.  우리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할인 마트들이 훨씬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함을 알면서도 그 가격에 대해 ‘흥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매일매일을 어렵게 살아가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이웃들 혹은 자신보다 소득 수준이 낮은 이웃들에 대해서는 흥정을 하려고 가격을 깎으려고 한다. 가끔은 너무 많은 마진을 남긴다고 또 바가지 씌우려 한다고 ‘속으로’, ‘겉으로’ 의심을 한다. 왜 이러한 ‘불공평한 대우’가 발생하는 것일까? 몇 가지 이유들을 생각해 보자. 우선, 대형 할인 마트에 대한 불만 사항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매우 복잡한 고도의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혹은 보다 많이 배워 교양 있는 사람들이 하는 ‘비즈니스’이니 뭔가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우리 지역에 이렇게 크고 멋진 대형 마트가 입점하니 지역이 보다 발전한 것 같고 지역민들이 삶의 질이 나이진 것 같다고 생각하며 훨씬 관대한 잣대를 적용하는가? 그것도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당연한 일이라 치부하며 부르는 값에 순응하며 지불 행위를 하는데 길들여지고 있는 건가?

 

■ 혹시 우리는 대기업이 정 절차와 가격에 순응하여 단순히 정가를 지불하는 ‘지불기계’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대형 할인 마트도 생선 장사와 마찬가지로 이윤을 남기는 ‘장사’다. 어물전 상인들에게 흥정을 하여 값을 낮추면 상인들 주머니로 들어가는 돈이 좀 줄듯이 할인 마트 주주나 기업주의 이윤 줄이면 값은 낮아진다. 크게 복잡한 문제가 아니다. 비즈니스의 합리성도 어물전 상인들의 그것처럼 많은 이윤을 남기는 것이다. 지역민의 삶에 도움이 된다면 왜 그렇게들 살기 좋은 지역을 떠나려고 하고, 이웃들은 할인 마트 입점 이후 늘 울상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또 자신이 대기업에 정한 절차와 가격에 순응하는 '지불 기계'가 되어가는 것을 피하는 것이 보다 인간다운 모습일 것이라 생각한다.

 

■강자 앞에서 작아지고 약자에는 군림하려는 우리들의 ‘비겁한 모습’

 

최소한 이 두 가지 운영원리의 차이로는 한 쪽엔 흥정을 하면서 다른 쪽엔 하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또한 가끔씩 소비자 고발 프로그램에 보도되는 대기업의 '몰염치한 행위'를 보았을 때(미국산 소고기를 호주산으로 둔갑시킨 일이나, 기한이 지난 수산물을 매일 새 라벨을 붙여 판매하는 일) 우리가 영세 상인들을 특별히 비윤리적이라 판단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거대한 규모를 유지하는 대기업에 대해 순순히 응하면서, 소규모 영세 사업자나 칼 한 자루 쥐고 자신의 품을 팔아 열심히 일하는 여성들에 대p090411_013.jpg해서는 차가운 의심의 시선을 보내는 것은, 강자 앞에 작아지고 약자에 군림하려는 우리들의 ‘비겁한 모습’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더욱이 지역의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소득을 가로채는 대형 할인 마트의 ‘횡포’에 대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 보다 소득이 낮은 상인으로부터는 단 돈 천원까지 아끼려는 모습은 비윤리적이기까지 하다. 그렇게 아낀 천원으로 대형 마트의 소유주의 주머니를 채워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중에는 생계가 어려워 대형 마트에 가서도 재래시장 보다 싼 물품만 구입하며, 한 달 생계비를 아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재래시장에 가는 이유가 흥정을 통한 비용을 아끼기 위함이라면 굳이 말리고 싶지는 않다. 또한 열심히 아낀 돈으로 빈민이나 기아 퇴치 등 보다 공익을 위하는 일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 대형 마트에서는 수 만원을 이유도 묻지 않고 펑펑 쓰는 그들은 무엇 때문에 유독 이곳에 와서 흥정을 하는가 묻고 싶다. 값비싼 선글라스에 액세서리를 치렁치렁 끌고 다니면서 왜? 심지어 명품 핸드백 구두에 투입된 노동의 대가 보다 어마어마하게 더 많은 비용을 브랜드 가격에 치르면서 왜 그 천원을 그토록 악착같이 아끼려 하는가?    

 

■재래시장에 가서 열심히 흥정할 것이 아니라 대형마트를 감시하고 불법적이고 불합리한 요소들을 개선하도록 흥정하는 것이 우리에게 훨씬 이익이다.

 

오히려 선진국의 사례에서 보듯, 소비자 운동을 통해 대형 마트를 감시하여 대기업의 납품업체에 대한 불공정 계약 등의 횡포를 막고, 기업가들의 부도덕한 이윤추구를 법적으로 막아내는 것이 우리에게 훨씬 큰 이익이 될 것이다. 또 원가 절감 경쟁에 경종을 울려 개발도상국들의 노동 착취를 줄일 수 있다. 납품의 원칙을 세워 그들 나라에 사회보장제도를 압박할 수 있는 효율적인 도구가 되기도 한다. 또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제하여 안전한 먹을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된다. 또 경제 논리 보다 환경을 고려하고 지역 경제를 고려하여 지역 농수산품이나 공산품을 우선적으로 선정하여, 대형 할인 마트의 유통구조를 개선하여 화물 운송 거리를 줄이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 환경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생선손질하는 아주머니들의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깎아내리지 말아야

 

그럼에도 이러한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을 다른 누군가의 몫으로 남겨둔다거나 너무 오래 걸리는 문제이기 때문에 회피하고 싶다면 최소한 어판장에서 생선 손질하는 아주머니들의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깎아내리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의 삶과 노동에 대한 존경을 표하지 못할망정, 지역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미덕에 대한 선행학습은 하지는 못할망정 대도시의 살벌한 정서로 묵호항에 오는 일은 삼갔으면 좋겠다.  왜 해외여행을 갈 때, ‘팁을 줘야 한다’거나 ‘수프는 소리를 내며 먹는 게 아니다’라는 등 선행학습을 하지 않는가? 타문화에 대한 존중의 차원에서, 일종의 규칙들을 꼬박꼬박 잘 지키듯, 같은 강토에 사는 이웃들에 대한 존중의 차원에서 지역의 어머니들, 여성들을 보다 살갑게 대해 줬으면 한다.  

 

사진 찰영 - 오청후일시 - 2009년 4월 11일

2009년 12월 24일 목요일

‘정당하게’ 담배 피우기

 

‘정당하게’ 담배 피우기


참 담배 끊기 힘든 계절이 돌아왔다. 새해엔 담배를 끊어야지 결심을 하다가도 창밖으로 꽁꽁 언 거리를 내려다보면 저절로 담배 한 대 물게 된다. 그리곤 ‘그래 내가 무슨 천년만년 살아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담배를 끊나. 가끔은 이렇게 세상을 관조하면서 쉬엄쉬엄 살아야지.’ 코로, 또 입으로 하얀 연기를 뿜어낸다.

 

■흡연 ‘담배 피우면 죽는다’는 협박도 소용없다.

흡연의 폐해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흡연자 본인의 건강문제일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 세계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는 매년 600만 명을 넘었고 2030년에는 8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쿠키뉴스 관련기사)

그런데 ‘흡연하면 당신의 수명을 짧아질 것’ 따위의 경고문구는 흡연자들에게 거의 아무런 반향도 일으키고 있지 않아 보인다. 이는 한 인간의 목숨이 그 개인의 소유라는 현실주의적 사고의 위력인 듯하다. 현대사회는 자살이 법적 도덕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세상에 살아가고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의 선택이라는 가치가 극단적으로 존중받는 시기이기도 한 것 같다.

또 지금과 같이 욕구충족이 소비라는 매우 즉각적이고 효율적인 수단을 통해 전례 없이 용이해진 시대에, 당장 체감할 수도 없는 ‘수십 년 후에 늙어서 병들고 고생한다.’라는 충고가 흡연자로 하여금 당장의 열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흡연의 달콤함을 뿌리치게 하는 것은 무리다.


■간접흡연 'Say No'한다고 해결할 수 있을까?

간접흡연 문제도 흡연이 야기하는 크나큰 사회적 문제이다. 얼마 전(9일) 세계보건기구는 간접흡연으로 사망하는 전 세계 인구가 60만 명이라고 추산했다.(서울신문 관련기사) 또 우리국민 2명 중 1명이 일상적으로 간접흡여에 의해 고통을 받고 있으며, 우리나라 여성 폐암환자의 90%가 비흡연자라는 사실(Say No 캠페인 관련자료)은 간접흡연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를 보여준다. 어떤 일이든지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잘못으로 자신이 피해를 입는 것은 억울하고 부당한 일이다.

그럼에도 간접흡연은 흡연자로 하여금 담배를 끊게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간접흡연이라는 이슈 자체가 개개인의 에티켓 문제이기 때문이다. 비록 자신이 지금은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이기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지만, 이런 누군가 꾸준히 지적하고 감화시켜 가르치고 깨닫게 한다 남이 없는 곳에서 담배를 피울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사람은 변화할 수 있고 나쁜 습관도 개선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판단한다면, 담배를 끊지 않고도 충분히 간접흡연이라는 ‘사회부정의(간접흡연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일종의 사회부정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타 사회부정의와 마찬가지로 행위의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행위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나 어린이, 의료비 지불이 어려운 저소득층이 집중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다.)’를 없앨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다.    


■금연해야 하는 이유 따로 있다.


1. 담배 15 갑당 30년 이상 된 아름드리나무가 맥없이 쓰러지고 있다.

우선 담배 생산으로 인한 산림파괴 문제가 심각하다. 담뱃잎을 생산하거나 담배를 싸는 종이와 담배 갑을 만드는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산림이 파괴되고 있다. 또 나무를 태워 그 연기로 담뱃잎을 말리고 풍미를 더한다.  

이는 독특한 담배제조 과정에 연유한다. 담뱃잎은 수확된 이후 저장과 이송, 각종 처리 절차를 위해 높은 열을 뿜는 연기로 건조된다. 기간은 대략 1주일 정도 걸린다. 그 기간 내내 나무를 태워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선 끔찍한 남벌이 선행된다. 1회 건조에 1헥타르(1ha = 10,000m2), 연간으로 따지면 500만 ha 이상의 산림(‘6억 그루’의 나무들)이 담뱃잎을 말리는데 사라진다. 아직도 거의 대부분의 담배 생산국들이 이 방법을 ‘애용’한다. 심지어 이렇게 해야 담배 맛이 더 좋다고 한다.

여기에 더하여 ‘매년 전 세계 20만 ha의 삼림’이 새로 담배 밭을 일구기 위해 파괴된다.  더욱이 담배 제조 방식이 현대화되면서 추가적인 산림파괴가 필요하다. 분쇄된 담뱃잎을 마는 데 필요한 종이를 충당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서 매 시간 ‘6km의 종이’가 소모된다. 좀 더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도록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담배 15 갑(300개비)당 30년 이상 된 아름드리나무 한 그루가 맥없이 푹푹 쓰러지고 있다.

사실 우리는 담배를 피우는 속도로 삼림을 파괴하고 지구환경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말라위. 아프리카 동남부, 모잠비크 서쪽에 위치하며, 영어를 공용어로 쓰며, 세계에서 열 번째로 큰 호수인 말라위 호수가 위치한 나라이다. 말라위의 경우, 80%의 산림이 오직 담배를 생산하기 위해 파괴된다. (사실 말라위 농업에서 담배 농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3%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담배 농사가 얼마나 산림을 파괴하는 일인지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산림 파괴는 토양 침식, 홍수, 사막화의 원인이 되어, 농업용 토지를 못 쓰게 하고 이로 인해 식량 문제를 야기한다. 또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하는 등 인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2. 버려진 담배꽁초 5조 5,000억 개 다 어디로 갔나?

담배꽁초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발생시킨다. 2004년 한 해에만 5조 5,000억 개의 담배꽁초가 버려졌고(전 세계 인구로 나눴을 때 1인당 868개 씩), 190만 개만이 쓰레기통에 버려지거나 수거된 것으로 집계되었다. 또 6년 째(2006년 기준) 세계 쓰레기 중 발생 1위에 랭크되는 영예(?)를 차지했다. 영국에서만 하루에 122톤의 담배 ‘관련’ 쓰레기가 발생하는데 이는 2억 개의 담배꽁초와 2천만 개의 담배 포장지이다.(우리나라 관련 자료를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알아내려 했으나 ‘수집하고 있지 않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 많은 쓰레기를 비흡연자들도 공동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엄밀히 따지면 매우 부당한 일이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문제는 담배꽁초가 미생물에 의해 자연적으로 분해되는 성분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데 있다. 학자에 따라서 담배꽁초가 분해되는데 걸리는 시간에 대한 판단이 다르다. 25년에서 50년 걸린다는 의견도 있고, 어떤 학자들은 담배꽁초는 영원히 분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또 담배 한 개비는 4,000가지의 화학물질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 중 독성 물질들이 토양에 스며들어 광범위한 피해를 준다.

더욱이 비바람으로 도시의 하수구로 몰려든 꽁초들은 바다나 강이나 호수로 쓸려 들어간다. 새나 물고기 등의 동물들이 담배꽁초 잔해를 먹을 경우, 소화 장애로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변화가 생태계에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 학자들은 계속해서 연구 중이지만 그 피해를 쉽게 예상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는 클 것이라는 사실이다.


3. 담배 생산자 41% 담배 수확기 최소 1회 이상 GTS 앓는다

담뱃잎 농부병(Green tobacco sickness, GTS)은 담뱃잎을 재배하는 지역에서 담뱃잎 수확 중 니코틴이 피부를 통해 흡수되면서 생기는 급성 니코틴 중독증이다. 주로 담배를 수확하여 건조기를 이용하여 건조하는 시기에 발생한다. 두통, 어지러움, 구역질 등의 증상을 보인다. 최근 조사에서 담배 생산자들의 41%가 담배 수확기에 최소 1회 이상 이 병증을 앓았던 것으로 밝혀졌다.(WSJ 관련기사)

담배 생산을 담배 생산자나 담배 농장 일꾼들 개인의 선택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통계 수치가 보여주듯, 거의 확정적인데도, 병마와 싸우며 생계유지를 위해 담배 농사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의료지원 등 기초적인 사회 인프라가 잘 구축된 선진국 국민들이나 고소득층이 아니다. 아프리카나 아시아, 남미의 가난한 영세 자영농이나 헐값에 고용된 농업노동자들이다. 이들 가난한 일꾼들은 담배 농장에 고용되어 혹독한 노동과 병증을 강요받는다. 담배 재배는 한 개인의 경제적 이윤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생계유지를 위한 ‘강요’에 해당한다. 또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이러한 노동 착취와 불평등한 부의 재분배를 구조화하는 일을 방조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값비싼 입맛’ 혹은 ‘잘못들인 습관’로 인해 ‘충분히 방지할 수 있는’ 병증을 떠안으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양산된다는 사실은, 자신이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서, 또 볼 수 없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4. 농약 과다사용 담배 재배에는 필수적

담배 재배를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살충제와 제초제, 비료가 필요하다. 담배라는 작물이 원래 다른 작물에 비해 벌레와 질병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담배 생산자들은 다른 농사에 비해 보호 장비가 필수적임에도 경제적인 이유로, 혹은 관리 기관이나 생산자 자신들의 생산자 보호 인식 부족으로 보호복과 같은 필수 장비를 착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러한 농약들은 토양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를 오염시킨다. 이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그 물을 마셔야하는 사람들, 가축들, 그리고 주변에 사는 야생 동식물들에게 돌아간다.

담배 생산에 ‘필수적인’ 농약의 과다 사용은 생태계를 교란시킨다. 농약에 내성이 생긴 파리와 모기의 출현이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들을 퇴치하기 위해 독성이 더 강한 살충제를 개발하여 살포해야 하고 생태계는 더 심한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다.


5. 전체화재의 14.6% 담배 때문에

전 세계 화재 발생 원인의 40%가 부주의한 담뱃불 처리에 의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8년 12월 1일부터 2009년 12월 1일까지 발생한 총 화재건수는 47970건이었다. 이중 담배로 인한 화재건수는 7026건으로 14.6%이다. 같은 기간 화재로 인한 재산피해는 58억 7천만원이었고, 412명이 사망했고, 2102명이 부상을 입었다.(소방방재청 자료


■흡연을 에티켓의 문제로만 환원해서는 안 된다.

담배를 무조건 못 피우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담배 생산으로 병과 노동력 착취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그나마 자신의 생계를 꾸려나가던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일꾼들이 일자리에서 쫓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에서도 담배 생산과 판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효과와 일자리 등을 무시할 수는 없다. 오히려 조금 소극적인 방식이더라도, 담배 생산 회사들이 '친환경 윤리 경영'을 하게끔 강제하는 것이 현재로써는 더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이면서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담배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보다 전문적인 연구와 철저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사회 공론화도 필요하다. 합리적인 선에서 담뱃값을 인상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간접흡연 문제에만 천착하여 흡연을 에티켓의 문제로만 환원해서는 안 된다.

담배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로 인한 사회적 부담 및 삼림파괴의 정도를 담뱃값에 물려야 한다. 이를 담배 생산회사 및 판매회사에 물려야 한다. 얼마까지라고 정확하게 제안할 수는 없지만, 담뱃값은 지금 보다는 ‘훠-얼씬’ 비싸져야 한다. 그 인상가가 담배 농가에 높은 비율로 돌아가야 하며, 그들의 작업 환경을 개선하는데 쓰여야 함은 물론이다. 또 그들의 교육 여건과 복지 개선에 쓰여야 한다.

또 담배생산에 소요되는 목재의 상당수(지금까지 베어진 나무의 개수나, 지구 온난화의 속도를 고려하여 담배 생산에 소요되는 나무의 개수의 3-4배가 다시 심어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사실은 필수적이다.)를 대체할 수 있는 나무를 새로 심어(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삼림훼손과 지구온난화를 막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담배 피우려면 ‘도덕적이고 정당하게’ 피워야 한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진실이지만, 담배는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끊으라고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 중 일부는 제대로 된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배운 적이 없는 '산업화․근대화의 희생자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일부는 담배에 의존해 인류사에 남을 예술을 창조하기도 한다.(물론 그것에 흡연이 기여하는 부분이 어느 정도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더하여, 언제나 급격한 '변혁'에는 부작용(담배를 전면 금지 시킨다면, 이를테면 담배 밀거래가 생겨날 수 있고, 이에 따른 저개발국가 노동자들에 대한 더욱 극심한 착취가 생겨날 것이 불 보듯 뻔하다.)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말했듯이 시간을 두고 지루할 지라도 사회공론화를 통해 이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끝으로 흡연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흡연자 자신이 그처럼 좋아하는 담배를 보다 ‘도덕적’이고 ‘정당하게’ 피우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흡연자들의 도덕적 각성과 지적 근면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는 신경 써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단은 조금씩 줄임으로, 또 자신이 피우는 담배 회사의 윤리성에 대해 검토함으로, 조금 더 나아가면 담배 회사로 하여금 식수(植樹)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끔 소비자 운동을 벌임으로 조금씩 실천해 나갔으면 한다.